겟아웃 (2017) 감상

 

많은 글과 미디어에서 흑인은 밤처럼 어둡고 유령처럼 투명하게 그러져왔다. 주역에서 밀려난 채로, 무언가 사람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며.

 

그러나 강인한 주먹에 칼을 쥐고서 어둠에 은닉하는 존재로 묘사되어온 이들이 실은 유달리 강하지도, 폭력을 즐기지도 않으며 신화생물마냥 어둠에서 힘을 얻지도 않는다는 사실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흑인인 크리스는 죽음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고, 밤의 어둠에 안락감을 느끼기는커녕 오싹해한다. 지극히 평범한 반응이다. 다른 말로 인간적이다. 그렇게 관습적으로 빼앗겨온 지위를 되찾는다.

 

크리스가 사람이라는 점은 관객에게는 명백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작중에서 이방인이다. 멀쩡한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단 소리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수상하다며 경찰에게 신분증 검사 당하기 일쑤다. 살던 곳에서도 그런데 심지어 백인들로만 가득 찬 낯선 땅으로 옮겨가기까지 한다. 이 고립된 지역에서는 그나마 있는 흑인들도 어딘가 이상하다.

 

이때까지 에드거 앨런 포를 비롯해 많은 미스터리 호러 작품들이 제 손으로 타자화한 존재로부터의 침습을 상상하며 두려워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반대로 지금껏 이방인으로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온 이들의 공포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All I know is sometimes if there's too many white people, I get nervous, you know?

저도 알아요. 주위에 백인이 그득하면 불안해지죠.

 

흑인에 대한 백인의 공포는 알지 못함에서 오는 미지의 공포다. 반면 백인에 대한 흑인의 공포는 앎에서 오는 체념의 공포다. 밤중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차가 등 뒤를 쫓아올 때, 백인이 가득한 파티에 참석할 때, 인물은 앞으로 일어날 부조리를 이미 짐작하고 있다. 관객도 대부분 어렵지 않게 뒤이을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그건 저항조차 못 할 초자연적인 공포가 아니다. 이들에게 닥칠 불합리한 일들은 행하는 건 모두 같은 사람이다. 단지 대체로 피부가 흴 뿐이다.

 

은유와 직설이 섞인 단서를 밟아가다 보면 모든 전개를 예측할 만한데도 이 이야기가 여전히 무서운 이유는 현실과 접해 있기 때문일 테다. 이 탓에 영화에서의 경험은 현실까지 확장되며 크리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만약 당신의 피부색이 검다면, 공권력은 당신의 편이 아니다. 경찰은 운전대조차 잡지 않은 신고자의 신분증을 요구할 것이고, 형사는 실종 신고를 가볍게 치부할 것이다. 당신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고도 징계를 받을 것이고, 사건 현장에서 발견될 경우 가해자로 오인되어 총알이 몸에 박히지 않기 위해 두 손바닥을 들어 보여 항복부터 해야 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크리스는 억압과 폭력을 갚아주고 공포의 배경이 되는 집을 불태우며 떠난다. 이는 일종의 극복이며 이로써 크리스는 작품 외적으로 영웅이 된다. 그럼에도 그는 상처투성이이고 회복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공포를 유발하는 요소가 아미티지 가에만 있지 않음을 안다. 영화에서 사슴으로 빗대어지는 흑인의 수가 적지 않듯이 차별주의자 또한 징글맞게 득시글하다. 한 고비를 넘었으나 앞으로 수십만이 더.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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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로 따지면 미스터리 호러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지만 블랙 코미디가 본체 아닌가 싶은 영화다. 플롯만 따면 여친 따라 수상한 일가족의 만찬에 참석했다가 뇌 따일 뻔하는 단순한 내용인데 인종적인 요소가 메인 테마로 올라오면서 갓영화가 됐다. 클리셰 뒤집기도 최근 들어선 너무 많아져서 슬슬 질리는데 소수자를 위한 클리셰 뒤집기는 언제나 부족해 새로워 짱이야 더 많아져야 해.

 

상견례 자리는 수상한 가족의 면면을 긴장된 톤으로 드러내면서도 상황 자체는 백인들이 몰려오기 전까지는 그닥 기묘하지가 않다. 긴장감이란 것도 초대받았음에도 못 올 자리에 온 듯한 불편감에 가깝고 흑인 주인공인 이상 그건 아직 비일상보단 일상에 근접한 일이다.

 

로즈의 아버지가 “오바마는 내 인생 최고의 대통령이다.”라는 둥 흑인 친구 없는 티를 내면서 굳이 흑인 유명인만 골라 언급할 거라고 로즈가 경고한 것처럼 ‘흑인 남친이 백인 여친 집에 가는 일’이 내포한 불안은 여행 시작 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때문에 일상적이지만 경직된 풍경에서 은유적으로 생략된 행간을 인종적인 맥락으로 채워넣을 줄 아는 관객이라면 도리어 공포는 희석될 듯도 싶다. 단지 덩달아 불편해질 뿐.

 

크리스가 눈을 굴릴 때마다 장면이 흥미진진해진다. 다음엔 또 어떤 인종 차별이 나를 기다릴까. (안 웃음) 반면교사 매뉴얼에 올려도 될 정도로 갖가지 멍청한 소리를 보여준다.

 

차별 발언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어느 정도 따라올 수 있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꽤 친절한 영화라고 느꼈다. 백인 가족과 이야기 나누는 동안 집의 일부처럼 붙박여 있던 흑인 고용인들을 소개한 뒤 “이게 어떻게 보일지도 알고 나도 싫지만 차마 해고할 순 없었다.”라며 변명조로 덧붙인다거나. 하지만… 내가 맞다. 크리스가 맞다. 아니 친구가 맞았다. 친구 말을 잘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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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2차 감상 후기)

 

맨 첫 장면 납치당한 사람 드레인가? 실종신고 되고 웬 부자 백인 노인과 결혼당했다가 잠깐 정신 들자 겟 아웃 외친 그 사람. 그림자 진 데다 수염까지 길러서 얼굴이 잘 안 보이는데 체형이나 이마가 그런 것 같음.

다클리(책 제목. 재밌어용)에 언급되어 아는 장면이었는데도 흰색 세단이 보행 속도에 맞춰 서행할 때 낌새 채고 하는 대사가 인상깊음.

 

Okay. All right, just keep on walking, bruh. Don't do nothin' stupid. Just keep on… [sighs] Fuck this. I'mma fucking go the other way I came. Not today. Not me. You know how they like to do motherfuckers out there, man. I'm gone.

진정해. 계속 가는 거야.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그냥 걷자. (한숨) 됐어, 그냥 반대로 가자. 오늘 나한테 이러지 마. 잘못하면 큰일 나. 빨리 가자.

 

오프닝에 보여주는 흑백사진들은 크리스가 찍은 건가 봄.

 

기억도 안 나는 다니엘 칼루야 상탈 장면. (왜 준 거지?)

면도할 때 잘생김. 나 내리깐 눈 좋아하나 봄.

 

로즈 손 가득 차 있다고 이마로 문 두드리는 거 다시 봐도 웃기네 ㅜㅜ 저기요 혹 나요

 

그분들은 아셔? 내가 흑인인 거? ← 그야 물론 알겠지 사냥감 물색하고 컨펌해줬을 테니까………….

 

우리 아빠가 사회성은 좀 떨어지긴 해도 레이시스트는 아냐 ← 퍽이나 그러시겠다

 

넷플릭스에서 보는데 영화 화면 확장판이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담배 꺼내는데 아래가 잘려서 안 보임.

 

사슴 로드킬 장면 처음 봤을 때 동물인 것도 못 보고 웬 덩어리가 누가 집어던진 듯이 포물선 그리면서 튀어나와서 이거 슈퍼내추럴갓댐몬스터물이었어?! 함. 이제 보니 차체 앞에 동물 피 묻어 있네….

 

외따로 죽은 사슴 보면서 동질감 느끼는 장면 좋음.

 

로드킬 직후 크리스가 신분증 못 내밀게 로즈가 막는 장면 인종차별이라 방어해준 것처럼 보이지만 뒷 내용 아는 뇌로 보면 크리스의 행적이 공무상 기록에 안 남게 하려는 거 아냐? 경찰이 얼굴 본 것까진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외 인적사항을 모르면 나중에 신분 세탁 후 다시 마주쳐도 어물쩍 넘길 수 있으니까.

첫 감상은 경찰에게 반항하는 것도 백인이니까 가능한 거지… 정도였음.

 

백인 가족에게 초대받아 집안으로 들어가는 흑인과 그라운즈키퍼로 소개되어 집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어나더 흑인(그런데 알고 보면 백인)

아니 근데 고용인들 정체가 할머니 할아버지면 연기한답시고 조부모를 내내 세워놓고 일 시킨 게 되지 않음?

 

여기서 나오는구나 사슴 비유. 직전에 사슴=크리스=흑인 동일시해놓고 뒤이어 백인에게 “난 사슴이 싫어, 지긋지긋해. 사방에 득실거리잖아. 꼭 쥐처럼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하는 대사 주기. 한 마리를 처치했으니 앞으로 수십만 마리….

 

집안 투어 할 때 가족 사진 나오는구나. 아빠 엄마 자식 둘 말고도 조부모 있다는 떡밥.

할아버지 코빼기도 안 보이면서 예전에 육상에서 진 일 언급하며 거의 이겨내셨어 ← 이러는 게 기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살아있음. 다만 흑인의 몸을 뒤집어 쓰고서.

 

낯선 집의 지하실이 잠겨 있다면 꼬옥 미리 확인해두도록 해. 여기가 푸른 수염의 집일지 누가 알겠니.

완전히 외부와 유리되어 토탈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도 조심하도록 해…. 조심한다고 되겠느냐마는.

 

할머니가 아끼던 부엌이라 유지해놨다고 하면서 흑인 몸으로 살아있는 할머니 보여주기.

할아버지가 생전에 열던 파티 조부모를 추억하며 계속 연다고, 그분들은 사실 여전히 함께한다고 바로 옆에 할머니 세워두고 말하기.

 

저녁식사 때 싸움 거는 제러미 말린 게… 앞으로 잘 쓸 몸 상처 입을까 봐….

 

인종차별에 무덤덤해진 흑인 남친과 괜찮을 거라고 말하다가 막상 적나라한 인종차별 목격하자 대신 펄펄 화내는 백인 여친… 충분히 있을 법하고 꽤 건전한 축에 속하는 관계 같았는데. 사실 유일하게 정상인 같아서 더 의심했지만… 아니길 바랐어 아니길 바랐다고~ 일부러 편들어주는 것도 다 홀리려는 수작질이었지~

 

아니근데 이 둘 가족 다 있는 집에서 잔 거임? 키스하다가 옷 벗고 밤 된 거면 그런 의미지? 진짜 잔 거임? 바로 위아래옆방에 가족이 있는데?

 

사자 인형 돌려놓는 건 무슨 의민지 모르겠네. 감시당하는 느낌?

 

마비당해서 눈물 닦지도 못하면서 줄줄 흘리기만 할 때 정말 귀여움… 죄송.

 

침잠의 방 연출이 아름다움. 장엄한 음악과 우주처럼 새카만 공간에 유영하는 작고 창백한 푸른색 하나.

 

방 벽에 붙은 포스터 중 계속 로즈랑 같이 나오는 거에 Death Cheetah vs Matter 글자랑 해골이 그려져 있는데 검색해보니까 죽음에 저항하는 아미티지 가를 암시하는 거라나 하는 해석이 있네.

 

크리스 외 흑인들 죄 무슨 플라스틱 인간처럼 움직이길래 뇌 좀 절제해서 말 잘 듣게 만들었나 했지 속에 백인을 들어앉혀 놨을 줄은 몰랐지.

 

냅다 크리스 몸 만져보고 아랫도리 사이즈(아마도) 물어보는 여사님 흑인의 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말하는 거 같은데 남편 몸 갈아주려고 잘생겼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거였네… 스크립트 잘 썼네….

 

로건 킹(드레)을 최근에 잡아와서 최근에 시술했으니까 잘 됐나 보자는 건가 봄. 움직임이나 말하는 게 늙은 거 보면 옆에 붙어 있는 늙은 여자와 동년배일 테고.

피스트 범프에 악수시킨 건 정말 천재같다.

 

Life can be a sick joke.

인생은 때론 역겨운 농담 같다니까요.

 

유전병이었어요. / 너무 불공평한데요. ← 그러니까… 병만 빼고 읽으면 되는 거지.

 

수잔나 울면서 웃는 장면 표정 연기 레전드임….

 

백인 무리 중 유일한 일본계 캐릭터에게 눈치 없는 질문 넘기기… 유색인이라도 아시아계라서 여기선 따지자면 제삼자인데도.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역사와 아주 무관한 건 아니지만 미묘하다.

 

할아버지가 방송에서 내 피와 살을 바쳐서 완성했다고 말하는 것도 몸 바꿈 떡밥 같음

 

맨 처음에 길거리에서 납치해온 게 제러미였나 보네. 잔인한 포획 방식도 언급됐고 크리스 목 조를 때 폼이 똑같음.

 

사슴(흑인)이 경멸스러워 치워버리고 싶다던 아빠는 사슴 뿔로 들이받아 죽이고

차와 티스푼으로 정신 조종하려던 엄마는 다과용 나이프로 찔러 죽이고

쥐새끼라고 욕하며 목 졸라 죽이려던 남동생은 쥐처럼 밟아 죽임.

내내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던 연인은 자기 어머니가 그랬듯이 차도 옆에서 피 흘리며 홀로 누워 있다가 쓸쓸하게 죽게 둠.

 

정말 서사적으로 완벽하게 갚아줬다….

하지만 착잡함…. 공권력은 닿지도 않고 닿는다 해도 믿음직스럽지도 않고 여기 백인은 다 미치광이고 흑인도 실은 알맹이 백인이라 기댈 곳 하나 없는 상태에서 자기 구제를 위해 살인 저지르기….

맨 처음 제러미 뒤통수 내리칠 때 첫 번째는 필사적이었지만 두 번째는 조금 망설였던 것 같아서 더 안쓰러움.

 

사실 하나둘 죽이는 거 보면서 정당방위 인정 안 될 거나 걱정하긴 함. 손바닥 꿰뚫리고 막 그러지만 않았으면 친구 왔을 때 시체 은닉(…)하면 어떻게든 됐을 수도 있는데 상처 치료하려고 병원 갔다가 어쩌다 다쳤냐고 물으면 어떡함. 조사해보면 흑인 대상 불법수술 정황이 나오겠지만 집은 불탔고 백인 일가족이 몰살당했고 살인 저지른 피의자는 본인 피해는 미수에 그쳤는걸.

경찰차 도착했을 때도 너무 뚜렷한 가해자-피해자처럼 있긴 했지만 다 틀렸단 듯이 항복부터 하는 것 좀 보셈…. 하 착잡하다 착잡해.

 

트럼프 당선되고 차별주의자들 다 죽이고 떠나는 걸로 엔딩 바꿨다지만 이전엔딩은 감옥 갔다는 것 같아서 더 묘함.